노후 저수지는 시한폭탄

강원대 지역건설공학과 교수 김용성  

  1961년 7월11일, 전북 남원지역에 밤 8시부터 495㎜의 폭우가 쏟아졌다. 수마에 휩쓸려 11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건물 1400여동이 무너지고, 2500여정보의 전답이 사라지는 등 한 마을 전체가 사상 유례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 참사는 마을에서 500m가량 떨어진 저수지(높이 15m, 저수용량 18만t)의 물이 집중호우로 급작스럽게 불어나 제방이 무너지면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사실 이번 저수지 붕괴는 예견됐던 일이나 다름없다. 1960년대 이전에 건설된 저수지들은 이른바 ‘밀가루댐’으로 표현될 정도로 구조적으로 너무 취약하다. 제방 시공 시 흙을 다짐장비로 잘 다지고 공사를 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다짐장비를 사용하지 못한 곳이 많았다. 사람이 직접 다지는 인력다짐으로 시공하다보니 제방과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계 부위가 취약하게 되었다. 

‘밀가루댐’은 한국전쟁 직후 파괴된 농업시설을 재건할 때 임금으로 미국의 원조 밀가루를 하루 3㎏씩 주며 주민들을 인부로 동원한 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시공업자들이 밀가루마저 로비용으로 빼돌리는 통에 ‘밀가루 공사’는 부실 시공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소방방재청이 2005년부터 매년 실시 중인 저수지 일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 관리 저수지 1만4328곳 중 88%가 1970년대 이전 개발 성장기에 건설돼 노후화가 심하거나 내구성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축조된 지 60년 이상 경과된 노후 저수지가 전체의 57%를 차지하고, 4600여곳의 저수지는 퇴적토사 축적, 여수토 및 방수로의 파손, 제방 균열 및 누수 등의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자치단체의 저수지 유지관리비는 1곳당 연간 200만원에 불과해 시설 개·보수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실정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난해 기후변화에 따른 기후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소우(小雨) 지역에서는 한발과 가뭄이, 다우(多雨) 지역에서는 호우와 홍수가 빈발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패턴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태풍의 경우 1년에 서너 개 정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며 한반도를 관통할 땐 하루 약 400∼500㎜의 강수를 동반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 자료와 최근의 국지성 강우 패턴을 고려하면 1만2000여곳의 노후 저수지는 물폭탄이나 다름없다.

  우리와 가까운 대만에선 2009년 8월 태풍 모라꼿의 영향으로 3일간 3000㎜, 일본에선 2011년 7월 태풍 망온 내습으로 하루 1000㎜의 폭우가 쏟아진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도 저수지가 무너지는데 집중호우가 내리는 시기에는 어떻겠는가.

  정부는 노후 저수지를 시급히 손봐야 한다. 그동안 농업용 저수지는 예산투자 순위에서 거의 꼴찌였다. 자치단체 관리 저수지는 지자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국가 예산투자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그로 인해 저수지 시설은 재난이 발생한 후에 복구하는 후진적 시스템이 악순환되고 있다. 저수지는 복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복구할 수는 없다.

  정부는 저수지 관련 예산투자를 늘려야 한다. 쥐꼬리 예산으로 그 많은 저수지를 어떻게 제대로 유지관리하겠는가. 밀가루댐이라는 노후 저수지들로 인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산대저수지 붕괴를 계기로 물 관리기관 일원화 등 물관리 체계의 일대 혁신을 기대한다.